A 자동차 회사의 개발부서에서 근무 중인 B 씨는 프로젝트 성과가 좋았던 덕분에, 독일인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일이 있었다. 그간의 노력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B 씨는 괜스레 겸연쩍고, 혹시나 동료들이 자신을 겸손치 못한 사람으로 볼까 봐 선뜻 고맙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급기야 안절부절못하다가 “Nein, nein”하며 손사래 치기 바쁘다. B 씨의 상사는 ‘칭찬을 하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칭찬이 틀렸다는 건가?’싶어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음성 언어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소통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Man kann nicht nicht kommunizieren).” 1976년 오스트리아 심리학자인 파울 바츨라빅(Paul Watzlawick)과 그의 동료가 주창한 의사소통의 한 핵심 공리(Axiom)이다.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부이거나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투덜거림이나 한숨과 같은 아류 언어(Subvocales Sprechen), 혹은 팔짱을 끼거나 눈을 감는 사소한 행위도 예컨대, 침묵하고 싶은 심정을 대변할 수 있다.
독일 내에서 학교나 직장생활 할 것 없이 한국인에게 B 씨의 상황은 남 일 같지 않다. 독일어를 어느 정도 배웠다 할지라도, 독일인과의 대화 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령 독일인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비언어적 행위를 한국인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론 한국인만의 습관화된 행동이 의도치 않게 소위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늘해짐)’할 상황을 가져온다. 이로 인해 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차치하고, 의사소통 상황조차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소리 없는 언어로 전쟁터에서 남기 위한 우리들의 자세
그런데도 여전히 이를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나 교육 방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선, 대부분의 학습 교재는 문법•어휘와 같은 언어적 기능 및 요소에 중점을 둔다. 그 때문에 목표 문화권 내에서 신체 언어 및 상황별 비언어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구체적인 맥락이나 행동적 반응에 관한 측면은 극히 일부만 다뤄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국적이나 문화 등이 다를지라도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유사성이 잠재적으로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에(Annahme von Ähnlichkeiten; Barna, 1994),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쉽게 간과한다. 그러나 만일 중요한 발표•면접을 앞두거나 동료와 상사처럼 공적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면, 우리가 모든 활동을 ‘learning by doing’, 즉 몸소 부딪히면서 배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대처할 수 없다.
독일 사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집합체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항상 타 문화권 사람들의 행동이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님을 경험으로 잘 안다. 개인에게는 새로운 집단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지만, 그 욕구를 충족 시켜 줄 기존의 구성원들은 이미 자신들의 문화가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비언어는 각 국가나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이다. 미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하기 전에, E-Learning, VR 시뮬레이션 등의 방식으로 그들의 문화와 소통방식을 교육한다.
우리가 낯선 독일에서 정착하는 것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소리 없는 언어’로 발발된 ‘소리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지 않을까? 따라서 문화 간 비언어 표현에서 발견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미리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양성하는 것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중요하다. 아울러 그것에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과 더불어 적재적소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통해 일차적으로 독일 사회에 속한 구성원으로서 일상, 직장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장애 요인과 오해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자아 존중감과 정서적 안정 등 심리적•정서적 요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다.